Our Twisted... ‘Fuque’
우리들의 일그러진… ‘辛가’ (2022)
김준한, 피아노
이한, 전자음향
최초 아이디어는 조성진의 쇼팽 프렐류드 연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마지막 24번 프렐류드의 D음 종지를 주먹으로 강하게 내려치며 끝을 내는데, 망치질(hammering) 같기도 한 이 모습이 내 뇌리에 굉장히 강렬하게 박혀 다양한 음악적 상상을 하도록 만들었다.
‘피아노’와 ‘망치질’이라는 두 가지 단어의 결합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9번(흔히 “함머클라비어(Hammerklavier) 소나타” 라고 불리는 것)을 떠오르게 했다. 이는 내가 처 음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나에게 수많은 놀라움을 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나는 이러한 놀라움들을, 원곡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찬미하고자 하였다.
이 곡에는 몇 가지의 설계된 구조가 중첩·병합이 되어있는데, 이를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1. 전체적인 모토는 ‘형식적 일그러짐’에 대한 탐구이다. 이를 위해 “함머클라비어 소나타” 속에서 ‘형식적 일그러짐’이 발생된 경우들을 분석 및 분류하였다. 또한 이것을 기반으로, 앞서 말한 방식들에 대한 안티테제 역시 수립할 수 있었다. ‘형식적 일그러짐’이 발생하는 경우에 대한 분류는 아래와 같다.
ⓐ 화성적 흐름을 위한 프로세스가 지나치게 축소되거나 생략되었을 때
ⓑ 단위 시간 당 정보의 양이 달라졌을 때
ⓒ 음역의 갑작스러운 변화
ⓓ 셈여림의 갑작스러운 변화
ⓔ 음악적으로 성격이 다른 패시지가 짧게 삽입되었을 때
ⓕ 템포 또는 리듬이 인지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달라졌을 때
ⓖ 기존의 흐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강한 공격성을 가진 요소가 등장할 때
ⓗ 소리의 물리적인 밀집 정도가 바뀔 때
ⓘ 패시지의 묶음 단위가 지나치게 작아졌을 때
이러한 분류 속의 개별 항목들은, 곡의 전체적인 진행에 있어 완급조절을 하기 위한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2. 전자음향은 곡의 전반적인 형식을 형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자음향의 거시적인 흐름은
Ping-pong Delay → Flanger (+ Chorus) → Filter → Karplus-strong → Spectral Delay (via FFT) → Ping-pong Delay
의 순서로서, 첫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형태를 띤다. 만약 이 흐름을 각각 따로 뜯어 음향적 효과만을 본다면 극도로 낮은 일관성을 갖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흐름은 딜레이(Delay)를 이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강력한 일관성을 갖는다. 이러한 감각과 이성의 강한 모순 역시 ‘형식적 일그러짐’ 이라는 모토를 달성하기 위해 설계된 구조이다.
3. 피아노 건반 상에 존재하는 8개의 B♭은 느슨한 구조를 형성한다. 양 끝의 제일 높고 낮은 2개의 B♭을 제외한 나머지 6개의 B♭을 통해 6개의 조직을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각 조직에는 여러 개의 “함머클라비어 소나타”의 파편들이 종속된다. (종속의 기준은 파편 속에서 중점적으로 등장하는 B♭의 위치가 된다) 곡의 진행도에 따라 각 B♭ 조직의 등장 가중치가 정해진다. 이는 매우 느슨하게 지켜지는 구조이다.
제목은 위의 항목 중 2번을 통해 정해진 것이다. 고전적인 푸가(Fugue)처럼 딜레이를 이용하지만, 정작 고전적 방식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방법으로 일그러져 푸가의 형태는 아 니게 되었기 때문이다.